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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하반기부터 17년 상반기는 오랜 케이팝 팬으로서 쓰라린 소식들이 잇달아 들려온 기간이었다. 16년 6월 포미닛의 해체를 시작으로 투애니원, 원더걸스가 우리 곁을 떠나고 올 6월 씨스타가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팬들은 눈물의 걸그룹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스트리밍을 돌리는 한편, 이제 남아있는 2세대 걸그룹에게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팬들이 지아의 탈퇴로 옛 모습은 보기 어려워진 미쓰에이와 소속사와 조정 중이라는 소문만 무성한 카라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볼 즈음, 소녀시대는 한 인터뷰에서 해체한 동료 그룹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그들의 선택과 결정이 충분히 이해됐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열심히 활동했고 좋은 곡을 남겨줬다는 게 고마웠다.

소녀시대 유리 / W 코리아 8월호 인터뷰

 

십 대 시절부터 함께 현장에서 부딪히고 연예계를 경험한 동료만이 건넬 수 있는 단단한 경의는 소녀시대가 한 시대를 풍미한 걸그룹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단 사실을 입증하는 듯하다. 소녀시대 10주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 동안 소녀시대가 우리에게 준 것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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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녀들의 시대가 왔다!

가수는 노래로 말한다! 2007년 8월 5일 첫 번째 싱글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한 소녀시대는 10년간 기념비적인 히트곡들을 남겼다.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도 호평이었지만 대중의 뇌리에 처음으로 꽂혔던 곡은 ‘Gee’일 것이다.

음원을 발표하자마자 각종 음원 사이트를 정복한 것은 물론, 각종 음악 방송의 1위를 석권했다. KBS <뮤직뱅크>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등장하기 전까지 9주 연속 1위를 하며 역사상 가장 오래 1위를 한 곡이었다.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후크송과 따라 추기 쉬운 안무도 인기에 한 몫을 더했다. 일명 개다리춤이라고 불렸던 ‘Gee’의 포인트 안무를 따라 춘 적 없는 대중은 드물 것이다. ‘Gee’ 활동 당시 귀여운 소녀 컨셉으로 입었던 컬러 스키니와 짧은 상의는 스키니 유행에 박차를 가했으며, 역시 함께 입었던 의상인 청바지와 흰 티셔츠는 지금도 청순함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Gee’의 히트로 소녀시대는 당시 공공연한 라이벌 그룹이었던 원더걸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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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가 가졌던 청순한 콘셉트의 대표곡이 ‘Gee’였다면 섹시 콘셉트의 대표는 ‘소원을 말해봐’일 것이다. ‘Gee’로 활동했던 해인 2009년 여름에 발표한 ‘소원을 말해봐’는 전 활동의 1위 실적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소녀시대 하면 떠오르는 춤과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소녀시대 10주년을 맞아 가졌던 팬미팅에서 윤아는 소녀시대 스타일 TOP3 중 2위를 한 ‘소원을 말해봐’ 활동에서 제복을 입어 좋았다고 코멘트 했다. ‘제복을 입고 방송국을 걸으면 갖춰 입은 느낌이라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 윤아의 말처럼, 소녀시대가 제복을 입은 이미지는 단순히 성적 대상화된 기호로서만이 아니라 여성으로 하여금 강인한 자신을 떠올릴 수도 있게 했다.

다리의 각선미를 강조하는 춤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히트를 친다. ‘소원을 말해봐’는 ‘GENIE’라는 제목으로 번안돼 소녀시대의 일본 데뷔곡이 되기도 했는데, 콘셉트가 강조했던 다리와 몸매가 일본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이다. 단숨에 일본 여성들의 워너비가 된 소녀시대는 이 활동으로 카라에 이어 두 번째로 도쿄돔에 입성한 한국 걸그룹이 될 기반을 닦았다.

이후 ‘Oh!’, ‘Run Devil Run’, ‘The Boys’ 등 숱한 히트곡을 내는 동시에 각종 음반과 음원상을 휩쓴다. 아시아를 넘어 월드 투어까지 훌륭히 소화한 소녀시대는 개인 활동과 유닛 활동을 통해 색다른 이미지를 보이며 소녀시대의 저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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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성연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 ‘다시 만난 세계’의 재전유

지난 16년 7월 28일,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을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총장의 비리에 맞서 스크럼을 짜고, 수도 없이 투입된 경찰 병력에 맞선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노래는 놀랍게도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였다.

‘다시 만난 세계’는 참 오랫동안 소녀시대의 곁을 지킨 노래다. S.E.S. 이후 연이은 걸그룹의 흥행 실패로 위축되어 있던  SM 엔터테인먼트는 소녀시대를 기획하면서 사활을 걸었다고 한다. 데뷔를 위해 길게는 7년, 짧게는 3년 동안 준비한 멤버가 있는 소녀시대이기에 그만큼 소녀시대를 거쳐 간 연습생들도 많다. ‘다시 만난 세계’ 역시 2002년쯤 발매될 SM 소속 걸그룹 밀크의 앨범에 넣으려 준비했다고 한다. 여러 사정으로 빙글빙글 돌던 ‘다시 만난 세계’는 데뷔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많은 연습생들에게 꾸준히 불렸을 것이다. 현재의 소녀시대 멤버들도 1년 이상을 ‘다시 만난 세계’의 안무와 노래 연습에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2009년 8월, 소녀시대가 데뷔 무대에서 불렀던 ‘다시 만난 세계’는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소녀시대에게 첫 1위를 안겨주기도 한다.

‘다시 만난 세계’의 어떤 점이 당시 농성장에 앉아있던 여성들이 그 곡을 민중가요처럼 부르게 만들었을까? 성별 지칭어가 없고, 슬픔과 고통,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나아가겠다는 가사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노래를 부른 소녀시대가, 그리고 불렀던 수많은 연습생이 꿈꾸던 꿈을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데뷔 곡인 다시 만난 세계는 지난해 광장에서 널리 불리면서 젊은 세대의 아침 이슬이 되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촛불 집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봤나?

영상을 몇 번이나 봤고, 가슴이 벅차서 울기도 했다. 가수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 순간이었다. 내가 이 일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고 음악이나 퍼포먼스로 전달했던 영감이 실현된 거니까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데뷔 당시에는 가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채 맑은 눈으로 흉내 내는 거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들이 더 와닿더라.

소녀시대 유리 / W 코리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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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우리는 소녀시대에게 무엇을 주는가?

걸그룹 기획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사안은 무엇일까? 바로 여성 팬을 공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아이디어이다. 문화예술계의 큰 소비자인 여성 팬을 포섭하는 일은 걸그룹과 보이그룹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소녀시대는 방송 예능을 통해서 각자 공고한 캐릭터를 쌓고 멤버들 간의 관계성을 중요하게 노출했다. 그 결과 어떤 걸그룹도 넘볼 수 없는 단단한 팬덤으로 성장해 소녀시대의 10년을 함께 응원해왔다.

그러나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의 숙명과도 같은 시련은 소녀시대 팬들에게도 있었다. ‘The Boys’나 ‘Mr. Mr.’와 같은 곡은 곡 자체에 여성 팬을 완전히 배제한 내용을 담고 있다. ‘Oh!’의 경우, 반복되는 ‘oh oh oh 오빠를 사랑해’를 보면 알 수 있듯 노골적으로 연상의 남성을 타겟팅한 노래였다.

소녀시대는 이런 팬들의 고충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0주년 앨범의 수록곡들은 성별 지칭어가 없는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타이틀곡 홀리데이’는 10주년을 맞이하는 소녀시대의 축제 분위기를 멜로디와 가사에 담았다. 뮤비 속에는 할리우드를 연상시키는 배경에서 멤버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한편의 뮤지컬처럼 움직인다. 특히 원 테이크로 촬영한 군무 씬은 계속 바뀌는 세트장과 멤버들의 안무 소화 능력이 어우러져 감탄이 나온다.

10주년을 대하는 소녀시대의 태도 역시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W 코리아 8월 호에 실린 소녀시대의 인터뷰(http://www.wkorea.com/2017/07/20/a-decade-to-remember/)는 멤버들의 소녀시대라는 그룹에 대한 애정만이 아니라 신뢰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콘텐츠가 많다는 티파니의 코멘트는 소녀시대가 1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생명력을 정확히 짚는다. 더불어 소녀시대의 앞날도 낙관할 만하다.

10년이라는 경력은 수명이 짧은 한국 걸그룹 역사상 특기할 만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대중 미디어 매체가 조명하는 소녀시대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다. KBS 해피투게더에서는 애교를 시키는가 하면, 과거의 가십들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현재 소비되는 소녀시대는 애교, 혹은 추억거리라는 두 가지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은 듯하다. 2세대 걸그룹들이 거의 활동을 종료하고 있는 와중, 앞으로 소녀시대가 보여줄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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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늘 여성 롤모델의 부재에 허덕인다. 남자 아이돌들이 신화같은, 슈퍼주니어같은 돈독하고 장수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고 말할 동안 신인 걸그룹들은 그런 롤모델을 갖지 못했다. 소녀시대의 이번 활동이 더욱 의미 있고 갚진 이유이다. 소녀시대가 더 이상 ‘소녀’가 아닌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앞으로 만들어 낼 세계가 궁금하다.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소녀들의 시대는 존재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