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중)

벌써 21기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단 채 출시 된 ‘명탐정 코난 극장판 : 진홍의 연가’(이하 진홍의 연가)가 8월 2일 개봉했다. 수입 애니메이션은 항상 로컬라이징(현지화)을 거친 뒤 더빙판과 자막판을 각각 출시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번 극장판은 국내 개봉작 중 최초로 더빙판이 생략되었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아이를 대동한 가족 관람객이 보러 간다? 해묵은 속설이 이제는 옛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첫 날에만 누적 관람객 9만 4천을 돌파하며 저력을 보여주었다. 극장 방문객이 늘어나는 주말 기록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진홍의 연가는 일본 개봉 후 시리즈 최고 성적을 달성하며, 코난 극장판 암흑기를 완전히 탈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아보자! 대체 이 시리즈가 어떤 시리즈이기에 보고 온 사람마다 칭찬을 하는지, 더빙판이 진행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대망의 덕질 포인트는 어디인지 지금부터 샅샅이 밝혀드리고자 한다.

 

명탐정 코난과 극장판의 암흑기

도라에몽, 포켓몬스터, 짱구, 요괴워치, 명탐정 코난을 빼고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논할 수 있을까? 해마다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고퀄리티 장수작품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불후의 극장판 시리즈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덕후 또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야말로 위에 언급한 다섯 작품들은 서로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극장판 5대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명탐정 코난 극장판의 경우에는 다른 극장판들과는 달리 숨막히는 추리, 러브라인을 다루고 있기에 전반적인 소비 연령대가 높고 퀄리티 또한 훌륭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견해도 좋을 만큼 인력을 갈아 넣은 티가 팍팍 나는 액션은 자타공인 코난 극장판의 상징이기도 하다.

(출처 : 구글 검색)

코난 극장판의 황금기라고 불렸던 1900년도 후반~2000년도 초반 작품들은 여태까지 팬들 사이에 레전드라고 불리며 그 이름을 빛내고 있다. 극장판에서는 최초로 괴도 키드가 등장했던 ‘세기말의 마술사’, 메인 커플인 에도가와 코난/쿠도 신이치(코난/남도일)와 모리 란(유미란)의 러브라인이 돋보이는 ‘눈동자 속의 암살자’, 코난 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극장판으로 꼽히는 ‘천국으로의 카운트다운’, 명탐정 코난의 작품 정체성을 완벽하게 살려낸 ‘베이커가의 망령’이 바로 이 라인에 속해있다.

그러나, 빛이 있다면 그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명탐정 코난 극장판의 경우에는 모두가 극찬했던 고퀄리티의 액션 씬이 시리즈 전체의 발목을 잡았다.

기승전결이 있는 콘텐츠, 무엇보다 추리물은 생생한 현장감과 논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코난 극장판은 점차 스토리보다는 큰 스케일과 액션에 비중을 두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볼거리 위주의 극장판이 만들어지며 추리 탐정물을 원했던 코난 팬덤의 불만이 치솟았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추리 요소와 스토리에 대한 아쉬운 평가가 이어지던 중, 작년에 개봉한 ‘명탐정 코난 : 순흑의 악몽’이 간만에 호평을 이끌어냈다. 여전히 추리 요소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극장판 특유의 퀄리티와 탄탄한 스토리라인은 검은 조직과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었고, 곧 떠나갔던 팬까지 끌어 모았다.

 

핫토리 헤이지♡토야마 카즈하 연애라인과 신 캐릭터

긴긴 암흑기가 지나고 다시 세를 모으기 시작한 코난 팬덤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진홍의 연가이다. 진홍의 연가는 이전까지의 부진을 날려버리려는 듯 연일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 호평 일색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번번이 지적 받았던 추리 요소에 대한 아쉬움까지 극복해냈다고 평가 받는 진홍의 연가, 단연 눈에 띄는 관전요소는 ‘로맨스’이다.

(출처 : 구글 검색)

명탐정 코난에 공식 커플은 많지만 그 중에 단연 고구마는 오사카 커플인 핫토리 헤이지(하인성)와 토야마 카즈하(서가영)라더라는 말이 있다. 토닥토닥 싸우며 맞관삽질(서로에게 연애 감정이 있으나 밝히지 않고 속만 썩이는 행위)을 팝콘하는 맛에 판다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메마른 헤카(헤이지와 카즈하 커플) 팬덤에게 진홍의 연가가 단비처럼 내렸다.

안 그래도 오사카에 적을 두고 있어 보기도 힘든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던 헤이지와 카즈하 커플이 진도를 왕창 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2003년에 개봉했던 7기 ‘미궁의 십자로’ 이후 처음 극장판 주역을 맡아 분량과 서비스가 차다 못해 넘쳐날 할 예정이다.

액션의 규모를 줄이고 추리 비중을 늘렸다더니 폭탄을 터트리는 대신에 스토리 전반에 진한 연애라인을 깔아두었다. 두 사람의 케미와 연애라인이 얼마나 달달하고 애틋한가 하니, 포스터에 당당하게 내 건 미스터리 로맨스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추리 로맨스물이었다는 평이 줄을 잇는다. 오죽하면 일본 현지에서는 시리즈 최고 스코어의 구성성분 중 50%는 커플이라는 괴담 아닌 괴담이 들려올 정도이니 말 다했다.(이는 즉 추리물 보러 갔다가 염장당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같으니 관람 시 참고하도록 하자)

(출처 : 구글 검색)

응원하던 커플이 잘 되고 있을 때 매번 질리지도 않고 찾아오는 ‘사랑의 라이벌’ 기믹이 있으니, 이번 극장판 신 캐릭터의 포지션이 심상치 않다. 단행본에 살짝 등장하며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렸던 의문의 여성 ‘오오카 모미지’가 드디어 등장한다.

‘아니 기껏 잘 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서 라이벌이!’의 반응과 동시에 ‘모미지 그래도 괜찮지 않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라면 팬을 얻는 법! 해당 캐릭터의 거취가 어느 쪽으로 향할 지 섣불리 점 칠 수는 없겠으나 작가의 무리수를 피해 사랑받는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잘 잡기를 바란다.

 

일본 풍의 소재와 로컬라이징

궁극의 로컬라이징으로 유명한 프리파라 (출처 : 구글)

기사를 시작하면서도 언급했지만 진홍의 연가는 독특하게도 더빙판이 제작되지 않았다. 국내에 수입되는 해외 애니메이션들은 원래 적당한 로컬라이징(현지 풍토와는 맞지 않는 작품의 요소를 국내 감성에 어울리게 치환하고 변형하는 작업)을 거쳐 더빙한다. 이 때문에 스크린에는 ‘자막’과 ‘더빙’의 두 버전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코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각각 일본명과 한국명을 두고 있는 것, 더빙판에서 도쿄는 서울로 오사카는 부산으로 불리는 등의 명칭 변경 등이 대표적인 로컬라이징의 예이다. 명탐정 코난은 과거 반일감정이 심했던 시기에 수입되었던 애니메이션이기에 엄격한 기준 하에 제작되었다. 이 때문에 코난 극장판의 더빙은 현재 수입되는 애니메이션들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수입되는데, 진홍의 연가는 이 로컬라이징 과정에서 굉장히 난감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번 극장판은 근래 제작된 코난 극장판 중 가장 추리요소가 복잡하게 들어가있다. 이는 곧 한 부분을 건드리면 다른 부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출처 : 애니메이션 치하야후루 중)

다른 소재였다면 모를까, 이번 소재가 하필이면 일본의 전통 놀이인 ‘카루타’였다는 점이 수입사가 로컬라이징을 포기하고 자막판만 내보내는 사상 초유의 선택지를 고르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에는 딱히 카루타를 대체할 놀이가 없는데, 더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컬라이징을 해야만한다. 이도 저도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이전에 비슷한 문제로 결국 한국 상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례도 있었기에 팬들 사이에서도 ‘과연 진홍의 연가가 국내에 개봉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 뜨거운 논쟁을 낳았고, 결과적으로 더빙판 없이 자막 판만 개봉되는 독특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한국 성우들의 목소리로 녹음된 코난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은 무척이나 아쉽지만, 이번 사례는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많은 사례로 남을 듯 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중)

‘명탐정 코난 : 진홍의 연가’의 첫 날 관객 수는 9만 4천명, 바꾸어 말하면 더빙판만을 소비하던 가족 관람객 수를 제외하더라도 9만 4천명의 소비자가 진홍의 연가를 관람하였다.

아직 주말이 다 끝나지 않았으며, ‘슈퍼배드3’ 등 쟁쟁한 경쟁작들이 가득한데다가, 기존에 코난 더빙판을 선택하여 관람하던 가족단위 관람객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미지수이기에 진홍의 연가가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될 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필자의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첫날부터 기록적인 스코어를 달성한 이 작품이 뿌듯한 결과를 안고 가기를 바란다.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의 소비층에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청소년 및 성인 관람객’ 수가 긍정적으로 집계된다면, 덕후를 타겟으로 제작되는 작품의 마케팅이 조금쯤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개봉 4일차인 8월 5일 토요일까지 25만 관객을 달성하였다. 극장판으로서는 모험이나 다름 없는 선택을 했다고는 해도 평가와 성적 모두 준수하다. 이번 휴가, 방학에 뭘 볼지 고민하고 있다면, 달달한 로맨스가 갑자기 땡긴다면, 코난은 잘 모르겠지만 이 기사를 읽고 흥미가 동했다면 때는 바로 지금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진홍의 연가가 불러일으킨 돌풍에, 아주 살짝 발을 얹어보는 것은 어떨까?